요즘 나는 트윗타래를 따라가다가 책 소개 트윗을 보고 책을 구입하는 편이 많아졌는데, 이 도미노총서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난 후, 도미노 시리즈에 관여한 함영준 큐레이터의 성추행 뉴스가 보도되고 재간이 힘들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이 책과 시리즈로 나온 탄탈로스의 신화,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을 추가로 구매했는데, 물론 이 작가나 출판사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죄책감이 드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는…)
요즘에는 자라나 H&M도 기웃대지 않고 거의 유니클로에서만 옷을 구매하는 나의 쇼핑패턴을 떠올리면 요즈음은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 디자이너가 트렌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절대적으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사입는 유니클로가 트렌드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많았는데, 그런 나의 가정이 맞을 수도 있겠다라는 동의를 이 책으로부터 구한 것 같다.
이 책은 패션 관련 글을 써 왔다는 박세진씨가 도미노 동인지에 실었던 글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패션 브랜드 런칭을 준비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읽었던 GQ마저 잘 읽지 않고 있었기에 오랫만에 패션 관련 아티클을 읽어본 셈이다. 그간 나름 부지런히 관련 글을 읽어왔음에도, 근과거와 동시대의 패션 산업에 대해 거시적인 이야기는 처음 읽어본 것 같다. 읽는 내내 너무 흥미로웠다.
특히, ‘나만의 스타일’이라는 말은 너무 커서 무의미해져버렸고, 시대를 선도하는 디자이너가 아닌 이상, 자신이 고유하게 구축한 삶의 방식으로서의 스타일이 아닌, 어떤 트렌드를 빠르게 이해하고 따라가는 식의 코스프레와 같은 것이라고 해석한 부분은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자아추구는 차라리 다른 데서 하고, 옷에 대한 필요한 정보량은 최대한 줄이고 그냥 세간이 하라는대로 따르는 것이 낫다.라고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몇가지는 좀 더 숙고할 부분들도 있다.
지은이는 전후 일본에서 자국의 스타일대로 복각했던 아메리칸 캐주얼 VANS를 프로토타입으로 삼고 저렴하게 압축생산하고 있는 유니클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최근 유니클로의 콜라보 라인을 보면, 모두 유럽의 디자이너들과 손을 잡고 있다. (질샌더, 이네스, theory, Liberty, 카린 로이펠트, 그리고 최근의 Lemaire까지) 미국 IVY 캐쥬얼보다는 유럽의 매끈한 클래식 캐쥬얼 무드를 담으려고 하는 야망이 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왜? 에 대한 답까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 어쨌든 최근의 패션의 흐름에서 SNS에서 좋아요로 치환돼 버린 디자인, 패션의 유행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내 생각은 요즈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뭘 입었는지조차 real-time으로 체감하는 것이 아니라 Hyper-Time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 주위의 현실 세계에는 눈길이 잘 가닿지 않는다. 핸드폰 안의 이미지와 링크 속에서의 패션이 더 자극적이지 않냐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일 코스프레를 위해서는 내 옆의 스타일 세터를 훔쳐보기보다는 인스타그램 스타가 올린 사진 속 아이템들이 무엇인지 묻는 DM이나 해쉬태그를 통해 트렌드가 매개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패션에서 크게 성공하려면 하이퍼 월드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의류학과가 옷을 만드는 학과인지도 모르고 점수에 맞춰 지원했다 다른 곳은 다 떨어지고, 이 학과에만 합격해서 다닌 이후로 동거가 시작된 패션과 디자인이라는 세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의류학과에 입학했던 해(1996년)에 동대문 종합시장 맞은편에서 해외패션지만 모아파는 서점에서 처음 직접 산 잡지인 ‘Fashion Show’에서 알렉산더 매퀸의 런웨이를 처음 보게 되었다. 이후 줄곧 나에게 ‘패션은 사치스러우면서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정언을 체화했던 패션 디자이너의 아이콘이었다. 이제 그런 고유한 (authentic) 디자이너는 필요없는 코스프레의 시절이다. 그러므로 그와 나의 시대가 많이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