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누아르 3월의 제비꽃 (필립 커) 을 읽고

이 책은 사전 정보를 갖고 구매한 것은 아니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 사러 갔다가 눈에 띄었다.  최근에 인문 쪽 번역책만 이어서 읽고, 해독수준의 존 버거 책까지 읽다 보니까, 훌렁훌렁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정말 필요했다.

시니컬한 유머를 구사하는 주인공인 사설탐정, 귄터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를 떠올리게 했는데, 역자후기를 보니까 작가가 나치 치하의 베를린에 필립 말로가 등장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이 소설을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사실 ‘깊은 잠 (Big Sleep)’ 한 권만을 읽었었는데, 읽으면서도 사람들이 찬사하는 것만큼 좋지는 않은데? 라고 의아했었다. 그 때 나는 필립 말로가 너무 멋있는 척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베를린 누아르’가 훨씬 재미있었다. 아마도 작년에 일 때문에 베를린에 두 번이나 다녀오면서 프리모 레비나 서경식 선생님의 홀로코스트 관련 책들을 통해 그 인간됨이라는 것이 얼마나 간편하게 취사선택될 수 있는지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가벼운 듯한 캐릭터의 탐정이 오히려 그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를 이야기로서 견디게 해 주는 장치였다는 생각이 든다.

쿠르퓌르스텐담이나 포츠담 광장, 쿠담 거리 등, 내가 가 본 적 있는 베를린 시내의 지명들이나 거리의 이름이 소설 안에 등장할 때마다, 작년의 베를린의 풍경들을 떠올려가면서 1936년, 그 시절의 베를린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는 홍콩의 곳곳을 소설 안에 등장시킨 찬호께이의 ’13.67′도 떠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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