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를 읽고

김환기씨의 작품을 주의깊게 본 적이 없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화가인 그가 남긴 그림보다 글을 먼저 대한 셈이다.

한국전쟁 전후 시대를 묘사하는 글을 너무 오랫만에 봤기 때문에 재미있었고, 그 시대를 통과해 온 예술가의 시선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더 좋았다. 흔히 우리가 외국과 우리 나라의 시대사의 그 연도를 서로 연결시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김환기씨가 루오, 미로, 브라크, 뷔페, 마네시에를 언급하거나, 동시대에 살아 있던 피카소를 추앙하거나 할 때면 그제서야 아 그 시대가 이 시대구나 하는 것이었다. 특히,  친했던 형으로 보이는 김중업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르꼬르뷔지에 스튜디오에 취직이 된 것을 축하하는 장면이라던가, 뉴욕에서 친분을 쌓은 모딜리아니의 젊었을 적 애인인 폴란드인 화상 ‘루니아’에 대한 언급을 볼 때는 정말 많이 놀랐다. 그 시절에 이미 세계적인 예술 시장의 한 복판에 서 있었던 예술가였을지 모른다. 그런 그도 젊은 시절에는 가난한 전후의 한국에서 해외여행은 꿈에서나 가능할 것이라고 체념적인 얘기를 하기도 했다. 사실 일제시대와 한국 전쟁 후에도 유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그의 부의 배경에 궁금증이 드는 것도 사실이나, 이 책만으로는 판단할 만한 자료가 없다. 이 작가의 전기가 한 권 있는 것 같은데, 제대로된 평론집도 없는 것 같다.

 

P47

파리에 보내는 편지
-중업형에게

중략

‘생각하면 참 미술가처럼 악착같은 존재는 없는 것 같소. 이런 상황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건 참 지독하거든. 만사가 그림을 할 수 없도록만 되어 있는 여건에서 그래도 그림을 해나가는 걸 보면 뭐라 할까 정말 지독한 친구들이오.

…중략

그런데 우리가 전쟁을 겪고 부산에 내려와 전쟁 속에서 살면서 친구들을 보고 나를 보매 그것이 문학적 감상이 아니라 우리들은 분명히 예술과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정말 예술과 싸우고 있는 것이오. 투쟁의 실감, 현실의 실감, 예술의 실감-이 얼마나 소중한 실감이 아니겠소.’

중략
1953. 7

 

피카소 얘기가 나와서 하나 더 언급하고자 한다. 이 책에는 김환기씨가 파리나 뉴욕에서 생활했던 시기의 일기도 포함되어 있어 외국어나 외국어명칭이 종종 나온다. 그럴 경우 반드시 국어로 음차된 것으로 표기되어 원래의 사전에서 그 영어나 불어의 원래 단어를 찾아 본 적이 많은데, 단 하나의 문장만이 영어 원문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것은 작업 중 라디오에서 들은 피카소의 부음 소식이다.

 

4월 8일. 일어나니 10:30 비가 온다. 일을 하며 방송을 듣자 하니 Pablo Picasso died this morning, at the age 91.  태양을 가지고 가버린 것 같아서 멍해진다. 세상이 적막해서 살맛이 없어진다. 심심해서 어찌 살꼬. 전무후무한 위대한 인간, 위대한 작가, 명복을 빈다.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예전에 KBS에서 영화 ‘러브레터’를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더빙판이었는데, 설원에서 후지이 이츠키가 ‘오겡끼 데스까, 와따시와 겡끼 데쓰!’라고 외치는 그  장면은 한국어 더빙을 입히지 않고 원본 그대로의 목소리를 내보냈다. 그 때, 나는 외화 프로듀서의 그 대담한 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장면만큼은 더빙으로 연출할 수 없는 오리지날이 있다는 것을 감지했을 것이다. 나는 김환기씨가 이 문장만 영어로 쓴 것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부음을 들었을 때의 자신의 충격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형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한 번, 남편과의 대화 중 예술 장르 중에 무엇이 최고냐는 질문에 나는 음악이라 답했고 남편은 글이라고 답했었다. 예술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으레 미술작품을 떠올리는데 나는 아주 내밀하게  그 작품들을 이해해 본 적은 별로 없다. 음악을 듣거나 글을 읽으면서 울어본 적은 있지만 미술 작품을 보고 한 번도 운 적은 없으니 말이다. 단 한 번, 작품 앞에 섰을 때 숨이 턱 막혀본 적은 있다. 그건 스페인 여행 중 보게 된 피카소의 ‘게르니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하면서 미술관을 가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감동을 기대하고 가는 것은 아니고 그저 작품의 실물을 직접 보는 것을 어떤 미술작품에 대한 궁극의 앎의 경지로 생각하고 기뻐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후 내가 김환기씨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한다고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이 책 한 권에서 받은 감상이 더 강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독서는 친구 세짐의 공이 크다. 그녀가 환기뮤지엄에서  이 책과 그의 아내인 이향인씨가 쓴 수필집, 이 두 권을 산 후에 한권을 나에게 빌려주고 서로 책을 읽고 돌려 보기로 했다. 이번주에는 세짐이를 만나서 이향인씨 책을 빌려올 거다. 미술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세짐이에게 나중에 줄 만 한 책 한 권을 염두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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