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雪国 (가와바타 야스나리)을 읽고

이 소설에는 겨울에 눈에 갇힌 고장의 여자들이 짜는 ‘지지미ちぢみ’에 대한 언급이 있는 대목이 있다. 홈패션을 배워서 내가 초등학생일 때, 옷을 종종 만들어 주셨던 엄마는 자글자글한 주름 잡힌 이 얇은 원단을 ‘지지미’라고 알려줬었고, 내가 의류학과를 들어간 후에는 학교에서 시어서커(Seersucker)라고 다시 배웠다. 지지미는 나에게  여름에 집에서 뒹굴거릴 때 입는 궁상맞는 옷이었는데, 시어서커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다시 개명을 한 것이다. 내가 결혼할 때 친정엄마가 나와 남편에게 선물해 준 여름 잠옷도 이 지지미였는데, 10년이 지난 어느 여름밤 남편이 이게 제일 시원하다고 뜬금없이 고백하기도 했기 때문에, 나에게 이 소재는 항상 여름만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갑자기 눈의 고장에서 겨울에 자아지고, 눈밭에서 바래지는 지지미 원단의 풍경을 상상하게 해 주는 것이다.

<책 속에서>

‘눈 속에서 실을 만들어 눈 속에서 짜고 눈으로 씻어 눈 위에서 바랜다. 실을 자아 옷감을 다 짜기까지 모든 일이 눈 속에서 이루어졌다. <눈 있는 곳에 지지미 있으니, 눈은 지지미의 모태로다>라고 옛사람도 책에 썼다.

눈에 갇힌 기나긴 겨울 동안에 산촌 여자들의 일거리가 되는 이 눈 지방의 삼[베] 지지미는, 시마무라도 헌 옷 가게를 찾아다니며 구해 여름 옷감으로 사용했다. 춤에 관심이 있었던 연고로 옛 노 의상을 취급하는 가게도 알고 있어, 질 좋은 지지미가 들어오면 언제건 보여달라고 미리 부탁해 둘 정도로 이 지지미를 즐겼고 홑겹 속옷으로도 해 입었다.

눈막이로 쳐놓은 발을 걷고 눈이 녹기 시작하는 봄철이면 옛날엔 첫 지지미 장이 섰다고 한다. 멀리서 지지미를 사러 오는 삼도의 포목 도매상들이 묵는 단골 여관이 있었고, 처녀들이 6개월 동안 정성을 다해 짜는 것도 이 첫 장을 위해서였다. 가깝고 먼 각지에서 온 산촌 남녀가 모여들고, 갖가지 구경거리며 장사꾼들의 가게도 여럿 생겨나 마을 축제처럼 북적댔다고 한다. 지지미에는 옷감을 짠 처녀의 이름과 주소를 적은 종이표를 달아 그 솜씨를 1등, 2등 하는 식으로 품평했다. 이것이 며느릿감을 고르는 기준도 되었다. 어릴 적에 짜는 법을 배운 열대여섯살부터 스물네다섯까지의 젋은 여자가 아니고서는 품질 좋은 지지미를 만들 수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 옷감의 윤기를 살리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또한 음력 10월부터 실을 잣기 시작해서 이듬해 2월 중순에 천 바래기를 끝내는 이 작업은, 눈에 갇혀 마땅히 할 일도 달리 없는 기간 동안 하는 일인 만큼 정성이 담기고 제품에 깊은 애착도 깃들었음직하다.

시마무라가 입는 지지미 가운데는 어쩌면 메이지 시대의 처녀가 짠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지지미를 시마무라는 지금도 <눈 바래기>에 내놓는다. 누가 입었는지 알 수 없는 헌 옷을 해마다 생산지로 바래기를 위해 보낸다는 것은 성가신 일이지만, 옛 처녀가 눈에 갇힌 동안 기울였을 정성을 생각하면 역시 그 옷감을 짠 처녀가 살았던 고장에서 제대로 바래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깊게 쌓인 눈 위에서 바래는 흰 모시 가득 아침 해가 비쳐 눈도 천도 모두 다홍빛으로 물드는 광경을 떠올리기만 해도 여름의 때가 말씀히 씻겨나가는 듯했고, 제 몸을 바래기하는 양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렇긴 해도 도쿄의 헌 옷 가게에 맡기는 것이라, 옛 방식 그대로의 바래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지 어떤지는 시마무라도 알지 못 한다.

바래기를 하는 가게는 옛날부터 있었다. 직녀가 저마다 집에서 바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바래기 가게에 부탁했다. 흰 지지미는 다 짠 후에 바래기를 하고, 색깔 있는 지지미는 실을 실패에 내다 걸어서 바랜다. 흰 지지미는 눈 위에 직접 널어 바랜다. 음력 1월부터 2월에 걸쳐 바래기 때문에 논밭을 온통 하얗게 뒤덮은 눈이 바래기 터로 쓰이게 된다.

천이든 실이든 잿물에 하룻밤 다궈놓았다가 다음날 아침 몇 번이고 물로 씻고서 짜낸 뒤에 바랜다. 이것을 며칠이고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흰 지지미가 거의 다 바래어갈 즈음, 아침 해가 떠올라 새빨갛게 비추는 풍경은 비할 떼 없이 아름다워, 따뜻한 지방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라고 옛사람도 쓴 바 있다. 또한 지지미 바래기가 끝났다는 것은 눈 지방에도 이제 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였으리라.

(중략)

털보다 가느다란 삼실은 천연 눈의 습기가 없으면 다루기 어려워 찬 계절이 좋으며, 추울 때 짠 모시가 더울 때 입어 피부에 시원한 것은 음양의 이치 때문이라고 옛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시마무라에게 휘감겨오는 고마코에게도 뭔가 서늘한 핵이 숨어 있는 듯했다. 그 때문에 한층 고마코의 몸 안 뜨거운 한 곳이 시마무라에게는 애틋하게 여겨졌다.

(중략)

눈 속에서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베 짜는 여인들의 생활은 그들이 완성시킨 지지미처럼 산뜻하고 밝지는 못했다. 마을 인상으로 충분히 그렇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지지미에 관해 쓴 옛날 책에도 당나라 진도옥의 시가 인용되어 있는데, 직녀를 고용해서까지 옷감을 짜는 집이 없었던 것은 한 필의 지지미를 짜는 데 워낙 많은 품이 들어 수지가 맞지 앟기 때문이라 했다.

그토록 고생한 무명의 장인은 이미 죽은 지 오래고, 아름다운 지지미만이 남았다. 여름에 서늘한 감촉을 주는, 시마무라 같은 이들의 사치스런 옷으로 변했다. 그다지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 시마무라에게는 문득 신기하게 여겨졌다. 온 마음을 바친 사랑의 흔적은 그 어느 때고 미지의 장소에서 사람을 감동시키고야 마는 것일까?

 

 

베를린 누아르 3월의 제비꽃 (필립 커) 을 읽고

이 책은 사전 정보를 갖고 구매한 것은 아니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 사러 갔다가 눈에 띄었다.  최근에 인문 쪽 번역책만 이어서 읽고, 해독수준의 존 버거 책까지 읽다 보니까, 훌렁훌렁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정말 필요했다.

시니컬한 유머를 구사하는 주인공인 사설탐정, 귄터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를 떠올리게 했는데, 역자후기를 보니까 작가가 나치 치하의 베를린에 필립 말로가 등장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이 소설을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사실 ‘깊은 잠 (Big Sleep)’ 한 권만을 읽었었는데, 읽으면서도 사람들이 찬사하는 것만큼 좋지는 않은데? 라고 의아했었다. 그 때 나는 필립 말로가 너무 멋있는 척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베를린 누아르’가 훨씬 재미있었다. 아마도 작년에 일 때문에 베를린에 두 번이나 다녀오면서 프리모 레비나 서경식 선생님의 홀로코스트 관련 책들을 통해 그 인간됨이라는 것이 얼마나 간편하게 취사선택될 수 있는지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가벼운 듯한 캐릭터의 탐정이 오히려 그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를 이야기로서 견디게 해 주는 장치였다는 생각이 든다.

쿠르퓌르스텐담이나 포츠담 광장, 쿠담 거리 등, 내가 가 본 적 있는 베를린 시내의 지명들이나 거리의 이름이 소설 안에 등장할 때마다, 작년의 베를린의 풍경들을 떠올려가면서 1936년, 그 시절의 베를린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는 홍콩의 곳곳을 소설 안에 등장시킨 찬호께이의 ’13.67′도 떠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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