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장은P21 ‘선’ 과P54 ‘여인’ 이다. 좀 길지만 여기에 남기고 싶다. 그 외의 인상적인 문장들도 몇 개 발췌한다.
화가가 우연이나 한 순간의 감정으로 붓을 갈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어서 이런 선을 그린다는 것을, 이렇게 현대적인 글로 보여줄 수 있다면 화가에게도 글이라는 것은 얼마나 강력한 도구인지 모르겠다. ‘선’은 미술가만이 쓸 수 있는 환상 장르 소설같다.
‘여인’편에서는, 그 시대에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있음에도 그림에 정진하는 한 여인을 지지하는 편견없는 선배의 마음이 느껴진다.
선(線)
1
비가 흡족히 젖어 흐르면 목욕탕에 들어간다.
해부학은 수술실 위에서 사용되지만, 인체를 구성하는 데는 거짓말이 된다.
반드시 그는 그렇게 모가지가 길어야만 하고, 동체(胴體)가 짧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가 미지근한 물 속에서 콩나물같이 솟아올라 삼색 타올을 사용하고, 목욕탕 옥상을 산책할 땐, 흐르던 비가 걷히고 지상에 한 오라기의 그늘도 지지 않았다.
춘사(春蛇)가 밤(栗)꽃을 꽂고 실안개처럼 등나무 어귀에 이르렀을 때, 옥사의 여인은 오수(午睡)에 흔들리는 손수건의 윙크를 받아, 아직도 탕기(湯氣)가 뭉게뭉게 떠오르는 몸뚱어리를 풀어 헤치고, 하늘에 뻗어오를 듯 기지개를 내뽑는다.
그만 나는 지오토의 잎사귀로 왼편 흉부에서부터 배꼽을 중심 삼아 오른편 허벅다리 선을 내리그었다.
진짜로 이러한 선을 그린 것이 아니라, 대학병원 정형외과 제2호 병실의 두 번째 침대에 누워 나는 이러한 선을 생각해 보았다.
2
비 내리는 아침이면, 출근시간 전에 기어코 나는 전차를 탄다. 출근시간 전이어야 전차 바닥이 청결하고, 또 승객수가 내가 꾀하려는 작품을 제작하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짚고 앉은 우산에선, 빗물이 흐르던 정거장까지의 거리 여하에 따라서 가늘게, 굵게, 짧게, 길게, 강하게 약하게 리듬 있는 속력을 가지고 물이 흐른다.
선이 가고 오고, 멈추고 흐르고, 곧게 휘어지게, 서로 뭉치었다 헤어졌다-인간의 무연(憮然)한 이 합작에서 나는 놀라운 구성미(構成美)를 알았고, 회화정신(繪畫精神)으로 돌아가 보기도 한다. 버라이어티한 음악까지 감득(感得)한다.
3
나는 한 잔 대포에 비지국을 향락한 뒤면, 웃옷을 벗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하이볼을 마신다. 그래야만 하이볼의 맛을 확실히 알 수가 있고, 그 진경(眞境)에 들어갈 수가 있으니까.
여기서 하나 슬픈 일은 나에게만 얼음덩이 하나를 더 넣어 주는 영리한 바텐더를 만났다. 실로 말을 뱉기가 귀찮으나, 결국 나는 간곡히 청하여 얼음조각 하나를 더 얻어 글라스에 담는다. 그런 뒤에 내 열 손가락은 습관적으로 야성(野性)을 실현하니, 현미경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구체(球體)의 집단 속에서 넘노는 얼음이 글라스의 안 벽에 부딪힐 때 일어나는 음향은 히틀러 앞에서라도 뻐기지 않고는 못 견디게, 나는 그것을 사랑한다.
이렇게 사랑하는 법이 불원하여 결국 환멸(幻滅)하게 되면, 나의 오장 속엔 선이 그려지는데, 뱀이 제 구멍에 들어가듯 가장 익숙하게, 바늘보다 가늘게, 내 몸뚱아리보다 더 굵게 굽이 굽이 그려진다.
만일, 얼마 뒤에 마담의 의사(意思)를 물리치고 글라스를 깨트렸다면, 술주정이거나 변태가 아니고 무어냐고? 고급 크림을 너무 많이 발랐기에 체온계가 미끄러져 땅바닥에 깨어졌거든 체온계 값을 내라?
나는 이 병실에 무리하게 집어 넣어졌기에, 내 소중한 손목시계를 침대 모서리에 부딪치어 영영 못 쓰게 만들어 버렸다. 이런 무법한 곳에는 있을 수 없다고, 과연 나는 과장선생에게 퇴원을 시켜 달라 해야 할 게 아닌가?
퇴원을 허락하지 않는 과장선생은 아까 그 마담보다 좀 나은 편이지만, 우연한 사실을 의식적으로 감행하는 나를 유리 들창에 철책이 없는 아주 전망이 좋은 2층 남향 병실에 집어 넣어야 할 것이다. 글라스의 파편은 주어 모으던 기사(技師)는 그 수술대의 의사같지 못했으니, 그 조각조각의 선의 구성을 계획할 능력이 없어 그만 무교(武橋)다리 으슥한 곳에 파편을 버렸다.
1940. 5
여인
언젠가 젊은 여성 한 분이 그림을 들고 나한테 왔다.
화가가 된다는 것이다. 화가가 되기 위해서 결혼을 했다 한다. 남편은 항해사였다.
여자가 결혼을 하고 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데, 이 여성은 예술을 하기 위해서 결혼을 했단다. 그 후 간혹 그림을 들고 찾아왔다. 그림은 재주가 있는 편이었다.
단 내외만 사는 단출한 새살림이 아니라, 층층시하에 수많은 가족을 거느리고 그야말로 시집살이 틈에서 독립된 방도 없이 그림을 그려 낸다는 것, 그림공부를 한다는 것은 실로 귀신의 재주일 수밖에 없다. 보면 귀족적인 몸매인데, 거칠어진 손을 보면 밥 짓고 빨래하는 노력만도 대단한 것 같다.
한 번은 남편과 동반해서 찾아왔다. 대단히 좋은 사람이었다. 이런 남편이면 아내가 미술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 후 우리도 이사했고 그들도 이사했다. 그 동안 격조히 지내 왔는데, 한번은 뜻밖에 부부동반으로 그림을 들고 나타났다. 고호 냄새가 나나 대단한 발전이었다.
청년 남편은 이번 모(某) 해양대학 교수로 전직되어 간다 한다. 대단히 반가웠다. 이제 이 젊은 부부의 앞에는 해방된 생활이 전개되는 것이다.
나는 내 일같이 기뻐서 격려와 축복과 아울러 미술론을 한참 하다 보니 우리 여류화가는 하품을 하고 있지 않은가-보아 하니 그녀는 만삭이 되어 있다. 옥동자를 낳으면 화업을 이어 가라고 부탁했다.
[수도평론], 1953. 6
P34
한 길 건너서 솜틀 소리가 난다. 푹닥푹닥 기계처럼 쉴 새 없이 돌아간다.
P36
아내는 피카소를 일러 ‘안하무인의 화가’라고 한다.
P. 98
또 이 페르시아의 미니아추르는 사람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여러 가지 미니어처의 오브제 다르(예술품)를 만들었고 모든 사물의 앙징스럽고 귀엽고 세세한 것을 가리켜 미니어처라고 통칭하게 만들었다.
P157
또 고깔이 붙고 노끈에다가 막대기 단추를 한 외투
P160
불어 공부를 충실히 하여라
P166
백설같은 침상
P188
우리 둘이만을 위해서 우리들은 살고 싶고 노력하고 싶어. 이것이 나의 진실이야. 나는 절대로 행복한 사람이야. 너도 절대로 행복한 사람이고
P198
신서울을 한강 건너로 옮길 만도 하다
P201
윤군의 깜찍한 감각에는 찔끔했다.
P206
산산이 부서진 루오의 그림을 생각해 본다
P228
그러던 항아리들, 부산 피난살이 3년 만에 내 집 들에 들어서니 우거진 난초 속이 온통 항아리의 파편천지였다. 사금파리 무더기에 서서 나는 이상한 충격을 받았다. 무엇인지 통쾌한 그런 심정이었다. 그 후 나는 다시 항아리에 손대지 않았다. 한두 개 요행이 남아 굴러다니는 것을 주워 적당히 두고 보는데 안심하고 있다.
어려운 살림으로 항아리를 모아 봤고 뜻밖에 내 힘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재난으로 해서 한꺼번에 없어지고 말았으니 과거의 내 장난이 결코 후회되지 않는다.
P230
조선항아리는 철두철미 평범합니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한 것,
거기엔 아무런 기교와 재조(才操)와 계획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한 형태, 자연한 빛깔은 도공의 무심(無心)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위대한 미술품을 만들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P232
우리 민족은 과거에도 자기를 애완하지 않았습니다. 생활이 그랬습니다. 문방구 등의 특수한 물건을 제외하고는 우리의 용기(容器)는 거의가 부엌살림에 따르는 실용기였습니다. 애완, 음미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실생활에 쓰는 일종의 소모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루어진 자기는 진실로 소박하고 단순하고 건전하고 원만하고 우아하고 따뜻하고 동적인가 하면 정적이고 깊고 또한 어딘지 서러운 정이 도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아름다운 자기가 되었습니다.
목화(木花)처럼 다사로운 백자, 두부살같이 보드라운 백자, 하늘처럼 싸늘한 백자, 쑥덕 같은 구수한 백자, 여하튼 흰 빛깔에 대한 민감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특질인 동시에 또한 저농이 아닌ㄱ 합니다. (未完)
P234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때에도 한 개인이 글을 써서 그것이 잡지가 되고 신문이 되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읽고, 또 읽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도서관이나 개인의 서고에 보직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영원에 가깝도록 세상에 남는다는 것이 대단히 무서운 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P259
나는 짧은 외국여행에서 돌아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종로를 걸어도 광화문을 걸어도 어쩐지 내 발이 땅에 붙어 있지 않은 듯한 그럼 무중력 상태 같은 것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육중하게 뻗어간 건물을 좌우에 두고 산의 연결 같은 돌바닥의 길을 걷다가 서울 거리에 나타나니 습관의 감각은 간사하기도 해서 몸의 중량이 이상해지며 허공을 걷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P316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다. 음악*문학*무용*연극 모두 다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
P319
작가가 늘 조심할 것은 상식적인 안목에 붙잡히는 것이다.
P345
빛깔을 엎질렀다.
P347
4월 17일
뉴욕 타임즈엔 매일 피카소의 기사. 죽고나니 어질러놓고 간 사생활이 지저분하게 나온다. 아!! 피카소 묻히기 전에.